두 번째 올리는 어머니의 글 - 늦가을에 찾아온 사랑

늦가을에 찾아온 사랑 


19년 전 밤 11시 40분에 난 처음으로 생명을 탄생시킨 

위대한 엄마가 되었다. 

열 달 동안 심한 입덧 때문에 먹지도 못 해서 뼈만 앙상한 

아기의 눈은 황소 눈보다 더욱 크게 보였다.


 "쌍꺼풀이 예쁘다. " 


2.5kg의 너무나 작았던 아기가 이제는 스무 살 처녀로 성장하였다. 

가을바람조차도 추워서 와들와들 떨어대던 그해의 가을은 

유난히도 풍성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온 가족을 행복으로 가득하게 했었다.

 

아기의 탄생과 함께 삶은 날마다 부산스러움으로 고요를 깨웠다. 

아가는 임신 3개월에 연탄가스로 유산의 위기에 직면했지만 

씩씩하게 견디어 내 품에 안기였다.

힘차게 생명의 힘을 모으던 아가는 임신 8개월에 

압력솥이 터져 화상을 입은 엄마 때문에 

또 한 번의 위기의 절정에 도달했었다. 

5일 동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아가는 

끈질긴 생명력의 숭고함을 버리지 않았고 6일 만에 

엄마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주며 힘겨운 숨소리로 삶의 용기를 주었다. 

벼랑 끝의 위험 속에서도 존재함의 숭고함을 

살아 숨 쉬는 아름다움으로 내 가슴에 안겨주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강탈하는 추운 겨울이 오고 있었지만 

우리는 3월의 봄을 느끼며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하게 가족들의 품으로 와준 아가에게 감사를 했었다. 

아기가 자라면서 말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염려를 알았던지 

아가는 총명하고 예쁘게 자라주었다. 

세월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요술쟁이이다. 

바람과 세월은 무명의 세월을 사는 모든 것을 보여주며 

말해주는 것이다. 

무덤까지 가는 길 아무도 모르지만, 세월은 말없이 

그곳까지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이며 동반자이다. 

세월은 그 무덤의 동반자와 함께 조그맣던 아가를 

20살 아가씨가 되도록 마술을 부려주었다.


스무 살 처녀가 된 내 아이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아기인데 

숙녀티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대학교 1학년을 보내며 더욱 성숙해지고 멋스러움이 풍기는 딸아이는 

호수처럼 아름다운 눈 속에 끝없는 우주를 품고 있는 것 같다

무한한 아름다움과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공부하며 

아르바이트를 불평 없이 해내는 모습이 그저 고맙다.

풍성한 가을만큼 넉넉한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딸아이가 

스무 번 이나 피고 지는 국화꽃을 보면서 예쁘게 자랐다. 


매화 꽃의 그윽한 향기와 고고한 자태를 20년 동안 바라보며 

꽃만큼 이나 숭고한 마음과 강인함으로 백설의 아름다움이 무색하다

무한한 꿈과 사랑을, 희망을 이루어갈 내 딸 지인이에게 건강과 

언제나 아름다운 축복이 다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들며 

살아가기를 하늘을 향하여 갈망한다.   


실한 삶의 열매를 위하여 오늘도 내 아가는 

힘찬 웃음으로 하루를 깨우고 있다. 

내일을 향하여 오늘을 준비하고 있는 아가를 위하여 지금 난 

삶의 항해사가 되어 내일을 향한 키를 돌리고 있다.

아직은 풍랑 이는 바다 위에서 내 아가의 꺼지지 않는 

등대가 되어주고 싶다.




-아들의 변-


누나의 이야기이다. 누나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무렵 


어머니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 할 이야기들이지만


그때는 가능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많이 없어진 연탄 보일러가 있었고, 


그 보일러에 문제가 생겨 연탄 가스가 새어 나왔다고 한다. 


연탄 가스 중독 때문에 뱃속의 아기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물론 어머니도... 


설상가상 지독한 시집살이 때문에 스트레스와 우울증도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지금 누나의 어두운 면이 그때 태교를 잘못해서 


그런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을 가지고 계신듯 하다. 


나는 아무래도 많은 혜택을 받았다. 


남자라는 이유에서가 아니고 누나에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나에게 베풀어 주었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그랬던 것 같다. 


풍족한 생활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나는 그렇지 못했다. 하고 싶었던 그림 공부도 할 수 없었다. 


일찍 철이 들어 상업고에 진학하겠다 했던 누나의 의지도 철회되었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사복과 대학생활은 중도 하차의 위기를 


몇번이나 겪고 나서야 학사모를 쓸 수 있었다. 돈이 문제였다. 


누나는 알바로, 공장 취직으로, 집안의 부족한 돈을 조달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그러는 사이 즐겨야 할 청소년의 시기를 놓친듯 했다.


지금도 알바를 하며 대학원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늦었지만 어머니도 아버지도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자 하지만


놓쳐버린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은 어떻게 하실 수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