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는 날엔 그리움이 - 2002년 7월 27일 게시된 글

눈이 내리는 날엔 그리움이

 -김 영순- 



안개의 번짐처럼 사방에 흰 눈이 사르륵 사르륵 쌓여 온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에는 누구나 그리워진다.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움 속에는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삶에 힘을 심어준다. 

식물들은 그리움의 물줄기를 찾아 생명력의 근원을 만들고 

물줄기는 땅속 깊이로 뻗어 내린 뿌리를 찾아 

그리움의 목마름을 채워준다. 


그리움은 사랑이며 희망이다. 

그리움은 용기이며 성공이다. 

그리움은 생명이며 인생이다. 


그리움이 없는 삶이란 물 없는 사막이요,

벌거벗고 광야를 횡단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인생의 참맛을 느끼는 시간은 그리움이 뭉개구름처럼 

몽울몽울 피워 올리는 시간이다. 


눈이 소복소복 쌓이듯 내 마음에 쌓이는 그리움이 

그저 싸늘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빛나다 

동상이 걸린다 할지라도, 

손끝을 눈밭에 묻으며 그리움을 찾을 수만 있다면 

거센 파도처럼 하얗게 부서져 새파랗게 질리는 

아픔이 가슴에 안겨와도 참으리라. 


그리움은 내일의 희망이고 삶 그 자체이다. 

이렇게 하염없이 흰 눈이 소담스러이 내리는 날엔 

내 안의 그리움이 외로운 산책을 걷는다.


저 머언 세월의 너머에 두고 온 아리도록 

그리운 시선은 눈 속에서 서성인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리던 

해 겨울은 만나는 그리움이 있어 

따스했고 스치는 겨울바람도 마냥 싱그럽기만 했다. 

이슬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빛을 가지고 있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겨주듯이 

사랑은 그렇게 사라졌다.


원숭이띠와 닭띠는 상극이라는 
유교사상의 바위틈에 짓눌리며 
그 아름다운 사랑은 빛이 바래가고 
뜨거운 태양 빛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였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흥겨움에 울려 퍼지던 그 날에는 
무릎까지 눈이 내렸었다.
시골 길엔 버스가 끊어지고 눈길을 몇 시간이나 걸려서 읍내에 나갔다. 
읍내 다방에서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설렘과 초조함을 달래고 있었다. 

순진한 시골청년, 그러나 패기 있고 당차 보이며 숨김이 없어 보이는 
순수와 미래가 꿈으로 차오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흰 눈이 소담스러이 쌓이던 날에 찾아왔던 
그 사랑은 120일간의 꿈이었다. 
화들짝 피워 올리는 매화꽃처럼 그렇게 흰 눈 속에서 
꽃을 피우고 싶었지만, 꽁꽁 얼었던 대지 위에 
눈이 녹아 버리듯 4월의 꽃 바람 속으로 
사랑은 그렇게 떠나갔다. 

세월은 그리움이라는 아름다운 추억을 초상으로 남겨 놓으며 
시간을 채색하는 삶이라는 색감을 만들었다.

그리고 내 가슴엔 20년이 넘도록 눈이 내렸지만 

한 번도 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눈내리는 겨울날에.....*




원문링크

http://osolgil1004.com.ne.kr





2002년 7월 27일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이다. 


그날 당일에 어머니가 이 글을 쓰셨는지 알수는 없지만 


어머니에게 더러 들었던 어머니의 첫사랑이야기였다. 


아버지가 보시면 그다지 좋아하실 것 같지는 않지만


삶이 그대로 문학이 되어가는 과정을 어머니는 그저 몸소 보여주시고 계셨다.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예술의 분야는 삶과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어머니의 글이 더 마음속에 깊이 들어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사람과 맺어지지 못했던 시절의 까마득한 이야기가 글로 남아 언제까지고 살아있기를 바라본다.


이 글에 대한 사용권을 어머니께 아직 위임 받지 못했지만... 뭐라 하시진 않겠지요?ㅎㅎ;;


앞으로 간간히 어머니의 낡은 홈페이지의 글을 하나씩 발굴하는 작업을 해 보려한다. 


고유어를 사용하신 것을 제외하고 띄어쓰기와 맞춤법에 관련해서 퇴고했다.


추후 뒷이야기를 업데이트 하련다.